국내 완성차기업들이 공급난 해소를 위한 설비 증설에 착수했다. 동시에 공급난 해소를 위한 단기적 처방 찾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장기적 처방인 만큼 단기적 공급난에 따른 가격 인상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1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현재 주문이 밀려 있는 완성차는 내수와 수출을 합쳐 모두 200만대가 훌쩍 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불과 몇 개월 만에 공급난이 더욱 심화됐다. 회사 관계자는 "타던 차를 바꾸거나 친환경차 등을 새로 구입하려는 글로벌 소비자가 급증한 반면 공급망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적체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며 "공급 해소를 위해 생산 설비 증산에도 나섰지만 역부족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최근 벌어지는 출고 부족은 반도체 공급난에 따른 구조적인 제약과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 생산 중단이 겹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공급난 해소를 위해 설비 증설에 나섰지만 신규 공장을 만드는데 5년이 걸린다"며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반도체 공장이 생산을 중단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 국가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 사슬 안에서 패키징 공정의 허브 역할 담당하고 있어 반도체 공급 여파의 직격타를 맞고 있다는 것. 게다가 반도체가 공급된다 해도 백신 보급에 시간이 필요해 생산 차질이 수시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올해 더욱 심각하다는 점이다. 글로벌 모든 완성차 기업이 지난해 떨어졌던 생산 차질을 만회하고 또다시 벌어질 반도체 부족을 방지하기 위해 주문량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 공장의 공급이 기대만큼 늘지 않아 반도체 확보가 곧 시장 내 경쟁력 우위로 직접 연결되는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쉽게 보면 반도체를 많이 확보하는 기업일수록 시장 점유율이 올라가는 구조로 변한 셈이다. 

 공급 부족에 반도체 가격도 덩달아 뛰어오르고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대만 TSMC는 최근 20% 가격 인상을 글로벌 완성차기업에 통보했다. 전기차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반도체가 필요한 완성차기업으로선 친환경차 가격 인상 압박을 크게 받는 부분이다. 또한 전기차에 들어가는 소재 가격도 올라 실제 제조사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가 많아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테슬라 등이 전기차 배터리 소재 가격 급등을 이유로 완성차 가격을 크게 올린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 완성차기업은 고민이 많다. 가뜩이나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제품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의 부담도 함께 증가하는 탓이다. 실제 작년 1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6.8%로 1982년 6월 이후 3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글로벌 물가 상승 압력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더욱 높아져 제조사마다 위기 타개를 위한 고육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마땅한 카드가 없어 한숨만 내쉬는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글로벌 소재 가격 인상, 코로나19, 물가 인상 등의 3중고는 제조사가 통제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반도체 부족과 물가 인상이 완성차기업의 공급난을 더욱 부추기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가격 인상은 최소화하고 인상분의 일부는 자체적으로 흡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원자재 가격 인상을 제품에 그대로 반영할 경우 국내 소비자들의 부담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여력이 되는 한 자체적인 가격 저항선을 설정하고 이를 방어하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것. 현대차 관계자는 "계약 때 고지된 가격이 중간에 변동될 수 있지만 기본 원칙은 가격의 고정"이라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가격 인상을 최소화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압박이 지속되면 현대차를 포함한 국내 완성차가격의 점진적 인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1차적인 원자재 가격 급등은 일시적으로 이익을 줄여 방어할 수 있지만 높은 공급가격이 유지되면 제 아무리 거대 기업이라도 재정 위기에 처할 수 있어서다. 박재용 자동차평론가는 "지금은 모든 완성차기업이 가격 인상을 압박받고 있다"며 "제조사마다 가격을 억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출고 적체 심화에 따라 현대차는 원자재를 직접 구입해 부품사에 공급하는 등 공장의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반도체의 직접 생산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그러나 직접 생산은 위험성도 안고 있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