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와일드 트레일을 위한 시승차는 랭글러 오버랜드 라인업을 중심으로 준비됐다. 여기서 지프 와일드 트레일의 난이도를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고난도의 오프로드 주파가 가능한 루비콘 트림이 아닌 무난한 오버랜드로도 주행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걸. 이 가운데 지프 80주년 에디션과 지프 최초 전동화 제품인 4xe를 시승 파트너로 선택했다.

 와일드 트레일의 베이스캠프는 해발 1,420m에 위치한 오투리조트다. 주변에 함백산을 비롯한 다양한 드라이브 코스가 위치해 있어 가끔 자동차 회사들이 신차 시승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하는 곳이다. 먼저 오른 차는 지프 80주년 에디션을 적용한 랭글러 오버랜드. 뉴트럴 그레이 메탈릭 색상의 외관과 80주년을 상징하는 장식을 곳곳에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출발 직전, 행사 운영 스텝들은 오프로드를 주행하는 3시간 반 동안 화장실이 없으니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당부했다.

 첫 코스는 가볍게 은대봉 자락을 스쳐지나가는 절골이다. 10여대의 랭글러는 처음부터 황지천의 지류를 시원스럽게 건너며 와일드 트레일을 시작했다. 굽이진 왕복 1차로의 콘크리트 포장길이 이어지다가 어느새 지면은 작고 거친 입자의 돌들로 가득했다. 랭글러는 차체를 출렁거리며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2.0ℓ 가솔린 터보 엔진도 숨소리가 거칠어 진다. 온로드에서 약점이 됐던 프레임 바디는 이제 제 가치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코스는 운탄고도다. 운탄고도는 과거 이 지역의 탄광에서 채취한 석탄을 나르던 임도다. 거친 지면은 파쇄석으로 잘 다져놔 주행이 편했다. 하지만 태백에 처음 도착할 때만해도 깨끗했던 차들은 벌써 흙 범벅이 돼 있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풍력 발전기들이 줄지어 서있는 매봉산의 바람의 언덕이다. 바람의 언덕은 길 주변의 광활한 배추밭과 산들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승용차도 오를 수 있을 만큼 주행 난이도는 낮다. 아니나 다를까 바람의 언덕엔 이미 여행을 온 일반인이 적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겐 태백산맥의 경치보다 여러 대의 랭글러가 더 생경했을 것이다. 여기서 특별한 오프로드는 따로 있었다. 태백시가 와일드 트레일을 위해 개방한 바람의 언덕 주변의 오프로드 코스. 여기는 사진이나 영상 촬영도 금지한 곳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평범한 풍경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미 스쳐지나간 자연의 모습들이 워낙 좋아서였을 지도 모른다.

 이어 해발 800m의 건의령으로 향했다. 지난 2017년, 대형 산불을 겪었던 이곳은 현재 조림 사업이 한창이다. 아직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진 않아 임도 주변은 휑하지만 저 멀리 겹겹이 두른 산맥이 장관을 이룬다. 지금까지는 일반 승용차도 지나갈 수 있었던 주행 난이도였지만 건의령부터는 지프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코스가 펼쳐졌다. 고르다만 지면은 차체를 뒤뚱거리기 일쑤였고 지그재그로 펼쳐진 경사도는 회전 반경이 너무 작고 가팔라 한 번에 돌아나가지 못했다. 여기를 승용차로 진입했다면 범퍼와 차체 하부에 적지 않은 손상이 발생했을 것이다. 임도 바로 옆은 가드레일 하나 없는 높은 낭떠러지라 제법 스릴 있었다. 코스 중간에 마련한 야외 라운지는 다행히 휴게소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야간에도 와일드 트레일은 이어진다. 오후 8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 인근의 함백산을 오르는 이 야간 주행 코스는 하늘이 열려 있을 경우에만 운영한다. 목적은 하나다. 은하수를 보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날 태백의 밤하늘은 별빛 대신 구름이 잔뜩 채워 다음을 기약했다.

 이튿날 아침, 서울로 복귀하기 전, 총 1시간30분 동안의 마지막 주행코스가 남았다. 이 날은 PHEV인 4xe에 올랐다. 국내에서 순수 전기만으로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한 유일한 차다. 4xe로 달릴 이번 주행코스 역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천으로 인해 땅이 젖어 있을 경우 접지력을 잃기 쉬워 급경사로 등의 일부 구간을 오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며칠 전 내린 비가 걸림돌이었다. 때문에 오르막 주행을 제외한 내리막 중심의 오프로드를 체험할 수 있었다.

 베이스캠프를 출발한지 5분 남짓, 평소 폐쇄돼있던 또 다른 길이 열렸다. 임도를 얼마나 더 달렸을까. 드디어 대망의 내리막 코스를 앞에 두고 있었다. 최대 경사각이 34.4%인 이 구간은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그 각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걸어서 오르기도 벅찰 정도로 가파르고 미끄럽다. 인스트럭터의 안내에 따라 진입 전, 트랜스퍼 케이스 레버를 4L로 밀어 넣고 내리막주행제어(Hill Descent Control) 기능을 켰다. HDC는 내리막에서 위치 에너지에 따른 가속을 막아 운전자가 조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번엔 시속 1~2㎞로 속력을 묶고 진흙탕으로 뛰어들었다. 내리막에서 랭글러 4xe는 후룸라이드처럼 유유히 떠내려간다. 회생 제동이 이뤄지면서 전력은 다시 차오르고 엔진은 숨을 죽인다. 묵직한 바위들이 만든 급경사는 몇 차례 더 이어졌고 다행히 모든 차는 무사히 통과했다.

 여기서 오프로드 주행이 끝난 줄 알았지만 아직 한 발이 더 남아 있었다. 마지막 오프로드 코스는 오투리조트의 스키장을 리프트에 따라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것이다. 크고 작은 돌들이 거칠게 펼쳐졌던 이 구간은 일반 승용차로는 주행하기 힘든 속도로 주파했다. 혹여나 타이어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인스트럭터는 지프의 성능이 충분하니 더 거칠어 몰아보라고 채찍질했다. 오르막길이 길게 이어지면서 4xe의 전력량은 70%대 까지 떨어졌지만 내리막에선 다시 에너지를 회수해냈다.

 와일드 트레일을 마치자 참가자들에겐 트레일 인증 배지가 수여됐다. 배지엔 태백 일대의 고저차를 시각화한 그래픽을 새겨 프로그램 참가 의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와일드 트레일은 지프가 미국에서 운영하는 루비콘 트레일 만큼 험난하진 않았다. 그러나 지프의 성능과 한국의 자연을 만끽하고자 하는 첫 걸음으로서 의미가 크다. 특히 강원도관광재단 주관으로 트레일 코스를 개발하는 만큼, 지금까지 보물 같이 숨겨졌던 오프로드의 공개도 예상할 수 있다. 군말 없이 경험으로 승부하겠다는 지프의 다음 여정이 기대되는 이유다.